마음대로 뽑아본 한국의 여성 인플루언서들
3월8일은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매년 이맘 때가 되면 다양한 매체에서 동서고금의 ‘여성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차별과 극복의 역사가 공존합니다. 이에 대한 반응은 어떨까요? 어떤 분들은 흥미, 기쁨, 감동을 느끼기도 하지만, 어떤 분들은 아예 무관심하거나 불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한 사회 구성원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세계 여성의 날'의 존재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 우리사회 성평등 수준을 가늠해보고,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나아갈 길을 모색해 보는 것이지요.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성평등' ‘여성 인권' 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지는 오래되지 않습니다. 이유도 매우 단순한데요. 제가 두 딸의 아버지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출산과 육아를 경험해 본 사람들이라면 이해하겠지만 갓태어난 아기나 어린 아이들에게 ‘사회적 성별'은 무의미합니다. 여자 아이라고 해서 무조건 치마나 공주님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늘 옷을 깔끔하게 입는다거나 조심조심 걸어다니는 것도 아닙니다. 집에 오면 여기저기 옷 벗어두는 꼬락서니나 샤워하고 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모습까지, 심지어는 말투나 목소리까지, 두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저는 신기하게 저의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제가 ‘남자 아이’라서 그런 줄 알았던 모습들이 의외로 성별과 무관했단 것을 깨달은 거죠. 언젠가부터 ‘여성적인 것, 남성적인 것이 정말 있긴 있는건가?’라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어차피 사람이면 누구나 자유롭고 편하고 싶을텐데, 남들 시선이나 관습 때문에 무언가를 강요받는 것이 좋을리 있을까요?
이와함께, 한 가지 버릇도 생겼습니다.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어떤 과거를 통해 현재에 이르렀는지 상상해 보는 것이죠. 특히, 각자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여성 인플루언서들을 볼 때면 ‘나중에 우리 애들도 저렇게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더 관심을 갖게 됩니다. 물론 여자 아이라고 꼭 여성 인플루언서들만 따라갈 필요도 없겠죠. 아이가 좋아하면 인플루언서의 성별은 상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선한 영향력을 가진 여성 인플루언서들이 늘어나면 더 많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지금부터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Wix 한국어 팀에서 ‘마음대로’ 뽑은 한국의 멋진 여성 인플루언서들에 대해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01. “남의 눈치 볼 것 없다" - 박막례 할머니
만약 나이 70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면? ‘100세 시대'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오늘날에도 박막례 할머니와 같은 인플루언서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4년 전 호주 여행 동영상을 처음 올린 할머니의 현재 구독자 수는 무려 131만 명(2021년 2월). 평생 장사로 다져진 억척스럽고 구수한 말투, 솔직 담백한 표현들이 손녀 김유라씨의 세련된 편집을 통해 많은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YouTube CEO 수잔 보이치키, Google CEO 선다 피차이도 할머니를 만나고 싶어해, 만남 영상이 남아 있습니다. 마치 정글과도 같다는 유튜브 생태계에서 박막례 할머니의 존재는 많은 점을 시사해 주죠. 저는 특히 할머니의 열린 마음과 당당함에 주목합니다. 만약 우리 아이들이 70, 80이 넘어서도 박막례 할머니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는 내 인생이 이렇게 뒤집어질 줄 알았으면 그렇게 안살았다" 재미만 추구할 것 같은 박막례 할머니 채널이지만 지난해 업로드한 ‘드디어!! 할머니가 처음 말해주는 인생의 비밀’편에서는 진지하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파출부, 엿장사, 떡장사, 과일장사, 리어카 장사까지, 장사란 장사는 다 해봤는데, 지금 같이 유명해질 줄 알았다면 자신이 원하는 일에 더 집중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죠. 영어도 배우고, 커피 타는 법도 배웠다면 미국 가서 써먹을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힘든 것은 알지만 그래도 ‘언제 인생이 뒤집어 질 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도전하라고 말합니다. 70이 넘어서도 “꿈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박막례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 힘을 얻지 않을 수 없겠죠?
02. 올해의 보이스 - 슬릭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래퍼 슬릭(SLEEQ, 본명 김령화)은 지난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텔레그램 n번방의 실체를 알린 ‘불꽃단'과 함께 ‘올해의 보이스'로 선정된 실력파 뮤지션입니다. 그가 주목 받는 이유는 단순히 ‘여성 래퍼’라서가 아닙니다. 힙합의 대중화로 라임과 플로우만 화려한 래퍼들이 인기를 끄는 가운데, 래퍼 슬릭처럼 랩을 위한 랩이 아닌 메시지를 위한 랩을 던지는 아티스트들은 남녀를 떠나 매우 드문 실정입니다. 래퍼 산이가 자신의 곡 ‘페미니스트'를 통해 여성이 군대를 가지 않고, 데이트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것을 비난하자, 곧바로 이를 디스하는 ‘이퀄리스트'를 내놓아 30~40만의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공개적으로 페미니스트란 사실을 밝힌 후 다양한 공격을 받기도 했지만 그점이 오히려 ‘올해의 보이스'로 선정된 배경이 된 듯 하네요.
막상 그의 정규곡 가사를 들어보면 ‘이퀄리스트'처럼 직설적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종종 삶에 대한 난해한 상념들이 나열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대부분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해볼 법한 고민들입니다. 자신의 성별이 여성일 뿐이지, 자신을 그냥 랩 하는 ‘사람’으로 정의하는 뮤지션에게 ‘여성 래퍼'라는 단어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붙여놓은 꼬리표에 불과하겠죠. 그의 노래 ‘걸어가’에 나오는 "누가 알아주길 원한 거 까지는 아니지만 다음을 원하고 다름을 원하는 것만으로 내 마음은 하이 파이브..."라는 가사는 단순히 슬릭 자신이 아닌 수많은 편견 속에 살아가는 모두에게 던지는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어색해 보일 수도 있는 이런 노력들이, 지금은 용기내지 못하는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될테니까요.
03. 문명특급 신문물 - MC 재재
MC 재재(본명 이은재)는 SBS의 유튜브 채널인 ‘스브스뉴스'의 한 코너로 시작하여 독립 채널이 된 ‘문명특급'의 진행자 및 프로듀서입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선정한 ‘2020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에서 신진여성문화인상(방송 부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형식의 ‘문명특급'은 오락성과 정보성을 모두 충족시키며 현재 11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명특급이 주목을 받게 된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문명특급에서는 많은 인터뷰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는 결혼/이혼 여부, 짓궂은 질문, 애교 또는 섹시 댄스 등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자극적이지 않아도 충분히 웃길 수 있다는 나름의 지론을 갖고 방송을 제작한다고 합니다. 대신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는 MC 재재의 ‘팬심’ 충만한 질문들은 출연자들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며 완벽한 케미를 이끌어냅니다.
MC 재재는 학창 시절 공부도 잘하고 교우 관계도 좋았다고 전해지는데, 이화여대 시절에는 학생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취업이 어려워 2015년 SBS 인턴으로 일을 시작합니다. 그의 취업이 힘들었던 이유를 스스로는 강한 개성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인턴으로 시작해 정직원이 된 경력과 타방송국 프로그램 출연 등 틀에 박혀있지 않은 그의 열정적인 행보는 ‘선한 영향력'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덕분에 그는 ‘연예인 반, 일반인 반’이라 하여 ‘연반인'이란 별칭으로도 불리고 있죠. 인터뷰 대상에 대하여 깜짝 놀랄 정도로 철저하게 조사를 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얼마 전 고인이 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 현재 목표는 엘런 드제너러스처럼 한국의 인기 토크쇼 진행자가 되는 것이라고 하네요.
04. 상담심리학 석사의 사생활 - 곽정은
“힘든데 너무 기뻐요" 얼마 전 곽정은 헤르츠 컴퍼니 대표의 연애 및 인생 상담 유튜브 채널 ‘곽정은의 사생활'에는 반가운 뉴스가 올라왔습니다. 78년생인 곽정은 대표가 상담심리대학원을 졸업했다는 뉴스였습니다. 학점도 잘 받았고 앞으로 박사 공부도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방송으로만 그를 접했던 저에게는 코스모폴리탄 피쳐 디렉터, 섹스 칼럼리스트, 방송인, 작가 등으로만 알고 있던 곽정은 대표가 프라이빗 명상 스튜디오의 대표란 사실도 좀 의외였습니다. 굳이 대학원까지 갈 필요가 있었을까란 생각도 들었지만 ‘곽정은의 사생활' ‘명상 스튜디오' ‘상담심리학'이라는 키워드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보니, 이상할 것도 없어 보입니다. 지난 십 수년간 만나왔던 수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왔던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내가 선택한 일이라는 건 내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외모 변화보다 더 크게 자존감을 높여줬다(동아일보 2016, 기사 중 발췌).” 그의 방송과 인터뷰를 접하다 보면 자신의 깨달음을 다른 여성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곽정은 대표는 스스로를 자존감이 낮았던 사람이라고 이야기 하죠. 특히 외모적으로 자존감이 떨어져, 성형과 다이어트로 자존감을 높여보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의 자존감을 높여준 것은 그의 직업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기준으로 선택을 하고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날 것을 권장합니다. 그의 수많은 조언들은 사실 자신을 치유해 가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아닐까요? 적지 않은 나이에 시작한 그의 새로운 도전을 조용히 응원해봅니다.
그럼 이만 저희들이 뽑은 인플루언서 소개를 마칠까 합니다. 더 많은 여성 인플루언서들이 존재할텐데, 모두 소개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네요.
블로그를 마치기 전에, ‘세계 여성의 날(IWD) 홈페이지’를 찾아가봤습니다. 2021년의 테마는 ‘도전을 선택하자(Choose to Challenge)입니다. 홈페이지에서는 #ChooseToChallenge #IWD2021란 해시태그와 함께 동참 의지를 밝히는 사진(16:9 비율)을 SNS에 공유하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해당 사진은 IWD 홈페이지에 제출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몇 분은 홈페이지 제작 솔루션인 Wix에서 도대체 왜 이렇게 여성의 날에 신경을 쓰는지 궁금하실 것입니다. 무슨 인권 단체도 아니고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무슨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주변의 가족, 친구, 동료들에게 조금 더 자유로운 세상이란 뭘까 함께 생각해보자는 것이죠.
‘오늘 하루’ 만이라도요...
송병주
Wix 한국어 프로덕트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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